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성상 파괴주의 (문단 편집) == 배경 == [[유스티니아누스 2세]] 이후 20년 간의 혼란 끝에 황제로 등극한 [[레온 3세]]가 성상 파괴 명령을 내리고, 성상 파괴 주의자들을 대거 중용하면서 발생하였다. 레온 3세가 이같은 일을 벌인 정확한 이유는 알려져 있지 않은데, 그 까닭은 종국에는 성상 파괴 운동이 소멸되어 근거 이론 등을 담은 저작들은 전부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단지 레온 3세의 출생지 및 근거지가 각각 게르마니키아 및 이사우리아라는 동방이었고, 레온 3세 사후로도 시리아가 성상 파괴 주의의 배후지로 기능했다는 점에서, 몇가지가 추론되고 있다. '''1. 가장 우선적으로, 시리아 지역은 전통적으로 [[단성론]]의 근거지였는데, 사실상 성상 파괴주의는 단성론적인 사고에서 기인했다는 점.''' 사실 아래 이유들보다 이게 정설로 취급받고 있다. 무엇보다도 성상파괴주의는 수백년 간 제국의 골치를 썩이던 단성론 문제가 해결된지 얼마 안된 시점에 단성론 거점에서 발흥했다는 게 굉장히 수상하다. 간단히 말해 이단으로 공인된 탓에 더이상 등장할 자리가 없던 단성론이 성상파괴주의로 포장지만 바꿔 재등장했다는 것. 참고로 단성론은 성상 파괴주의 이후로도 수차례 포장만 바꿔 재등장할 정도로 끈질겼다. 하지만 '레온 3세가 단성론을 지지한 황제가 끌어내려지는 것을 목격했음에도 과연 단성론을 지지할 것인가?' 라는 의문이 존재하며, 레온 3세 본인은 독실한 정통 정교 신자였다는 점에서 반론이 가능하다. '''2. 인근 지역에서 [[이슬람교]]가 발흥했는데, 이슬람교의 철저한 우상 숭배 금지 교리에 영향을 받았다는 점.''' 위의 내용이 대체로 정설이지만, 그래도 직관적으로 볼때 이슬람교의 영향을 지우기가 어렵긴 하다. 유의할 것은 이것이 동방이 아닌 서방의 교회에서 주로 주장했다는 것이다. 서방교회는 성상파괴주의 황제들을 Sarakenophron, 즉 사라센인처럼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멸시하였다. 이른바 성상파괴가 이슬람과 유대교에 영향을 받았다는 설은, 동로마의 간섭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동로마 황제를 멸시하는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다. '''3. 레온 3세 및 성상파괴주의의 주요 지지자들은 변방의 군인들로서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의 교양 있는 귀족들과 교육 수준 및 내용이 달랐는데 이로 인해 십계명 4조의 우상 숭배 금지를 문자 그대로 해석해 버렸다는 점.''' 콘스탄티노폴리스 지역의 [[그리스인]]들은 수백 년간에 걸친 종교적 말씨름과 키배와 현피 끝에[* 철학자들과 신학자들 조상 덕분인지 오늘날의 [[그리스인]]들 역시 토론이라면 끝장나는 민족이 되었다. [[그리스/문화#s-6]] 항목을 참고 할 것] 우상 숭배에 대한 내용 역시 체계적인 이론을 정립하고 관용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시골 출신의 군인들은 사정이 달랐던 것. '''4. 황제권 강화 노력과 동시에 당시 강력한 권한을 가졌던 수도원을 공격하기 위해서라는 것.''' 무난하고 평이한 설이다. 로마 황제는 전통적으로 [[폰티펙스 막시무스]]로서, 종교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그러한 전통적 권력을 잃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당시 강력한 권한과 토지를 가지고 있었던 수도원을 견제하기 위해 성상파괴를 주장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의할 것은 강력한 수도원 견제는 후대인 [[콘스탄티노스 5세]]대에 주로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레온 3세는 법률적으로는 '에클로가' 반포, 군사적으로도 공이 많은 강력한 황제였으며 로마 주교(교황)과도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성상파괴를 이해하는 것에 도움이 될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